요약
개인적인 일로 공사 일정이 4주나 미뤄 되면서 계획된 일정을 포기하고 후회 없는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 • •
• • •
삼촌께서 돌아가셨다.
예상치 못한 일을 조금이라도 대비하기 위해 셀프 인테리어를 계획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책 시나리오를 준비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상황은 시간이나 돈 관련된 문제로 예상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기록에 빌런을 공개처형이라도 하듯이 상세히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참고 참아서 세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간략하게 기록했다.
철거가 거의 마무리되고 큰방 단열 작업할 때쯤 삼촌께서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불과 10개월 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터라 멘탈이 바닥치기 충분한 일이었다. 삼촌께서는 일하시다가 다치셨는데 병원에 계시던 중에 코로나에 걸려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삼촌의 가족은 이민을 간 고모랑 나, 동생뿐이었는데 그나마 자주 연락을 했던 가족은 나뿐이었다. 돌아가시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해서 더 충격적이었다. 그 목소리에서도, 나눴던 대화 속에서도 마지막이라는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이 시점에 1주일간 공사를 중지했었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상태로 공사를 진행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부담이 가득한 인테리어를 직접 진행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리아(아내)한테 내색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한 달 정도 어디서 쉬다 오고 싶었지만, 일정을 맞추려면 조금도 쉴 수 없었다.
대략 한 달 뒤 어이없는 일을 발견했다.
목공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을 무렵, 문득 삼촌의 혹시 모를 빚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재산조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재산조회는 유가족이 주민센터에서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라는 것으로 고인의 모든 재산을 조회할 수가 있는데 대략 1주일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은행 빚이 있었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 들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삼촌이 병원에 계실 때 은행 관련 일을 대신 처리해서 빚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뭔 빚이란 말인가?!
상황 파악을 위해 은행에 갔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조카에게 권한이 없다며 거절하는 것을 내가 상속 1순위라는 것을 증명해 어렵게 계좌 이체 내역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대습상속으로 내가 상속 1순위다.) 이 과정이 너무나 스트레스받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뿐만 아니라 주민센터나 보험사 등 여러 업체에서 관련 서류를 받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 감정적으로 괴로웠다.
은행 기록을 찾아보니 마이너스 통장에서 누군가 돈을 꺼내쓴 기록이 있었다. 그것도 삼촌 사망 시각 이후로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삼촌 사망신고는 병원에서 처리했었다. 당시에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 없어서 그렇게 진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망신고가 빨리 이뤄지지 않아 그사이에 누군가 이체해 갔다. %!@#!@$!!!!!!!!!!!!!!
일단, 상속 포기와 한정 승인을 진행해야 했다. 동생과 미국에 있는 고모까지 동시에 진행해야 했는데 변호사를 알아보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후회를 만들기 싫었다.
이 당시 인테리어는 목공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젠 돈을 빼간 사람이 누군지 찾아야 했다. 왜냐면 채권자(은행)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일이 커지기 전에 처리를 잘해두고 싶었다. 게다가 돈을 꺼낸 사람은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돈을 꺼낸 것이기에 너무나 화가 났었다. 변호사에게 상담도 받아봤는데 빚이 문제가 될 가능성, 범인을 잡을 확률, 잡아도 돈을 받을 확률 등 긍정적인 얘기는 하나도 없어서 변호사에게 맡기기는 어려워 보였다.
빚을 발견하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3주 정도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살면서 누군가를 혈안이 되어 미친 듯이 찾으려고 노력해 보거나 고소장을 작성할 일은 없길 바랐다. 이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나 기관은 없었다. 경찰, 이동통신사, 병원 등 그 어느 곳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한 사람이 바보인 것처럼 무시하거나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뭣 같은 소리나 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한두 번 싸워 보니 젊은 나이에도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도대체 난 누구와, 무엇과 싸움하고 있는 걸까.
이 당시 인테리어는 목공과 전기공사, 단열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만으로도 버거운데 왜 이런 일까지 생긴 건지,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이때 멘탈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인테리어를 진행해야 했다. 인테리어 진행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불같이 화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화를 낸다고 공사 일정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이때 계획된 일정이 거의 한 달 정도 밀린 상황이었다. 셀프로 공사 일정을 맞추기에는 불가능이었다.
당시 현장 상태에서 공사를 이어서 진행해 줄 업체를 찾으려 했지만, 비용이 공사를 처음부터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들었고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빠른 방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이 당시 업체 찾기가 너무나 힘든 시기였다.
이 힘든 과정에서 뭐라도 만족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힘든 도전을 했는데 건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것 같았다. 많은 고민 끝에 계획된 공사 일정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대로 계속 인테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선택은 살면서 기억에 오래 남을 일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살면서 이보다 미친 선택이 있을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친 짓 해보는 거지 뭐!!
그래도 운이 좋았다.
결국 범인을 찾아 연락하고 돈을 받아 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뒤탈 없게 잘 마무리 지었다. 이번 일로 변호사 상담을 많이 받았는데 이런 일은 범인을 잡아도 돈 받기는 힘들 수 있는 일이라며 포기하라는 의견이 더 많았었다. 나 역시도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상황에 이런 일을 동시에 겪는다는 것 자체가 지지리도 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개월 뒤 다시 생각해 보니 셀프 인테리어 기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 보다 범인을 찾아서 돈까지 받아 낸 것이 확률이 더 낮을 것 같았다. 그렇게 탈 없이 잘 해결됐기에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경험 했다! 젠장!
이번 일은 마무리 짓기까지 대략 두 달 정도 걸렸다. 앞으로 잘 되려고 이러는 거겠지,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태니까 뭐든 잘 해낼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6개월이나 고생시킨 일이 몇 개월 뒤에 또 발생하게 된다.
• • •
Member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