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볼펜심을 사용하면서 마음에 드는 필기감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바꿔보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즐겨 사용하는 볼펜심이 정해졌지만, 그때 Pen N이 있었다면 새로운 볼펜심을 찾는 과정이 조금 더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Pen N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도 다양한 볼펜심을 하나의 펜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볼펜심이 출시될 때마다 펜을 함께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Pen N을 구입하고 처음 받아본 과정은 이전에 작성한 Antou Pen N 언박싱 글에 기록해 두었다.

60일 동안 Pen N을 사용하면서 평소 궁금했던 볼펜심들을 장착해봤다.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볼펜심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기대했던 장점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리필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도 경험했다. 처음에는 묵직하고 튼튼해 보였던 펜이었지만, 두 달 동안 사용하고 나니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Pen N의 무게와 그립감

두께감이 있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사용하다 보니 두꺼운 펜이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Antou Pen N과 Stilform ARC Gel Pen의 크기 비교
stilform ARC Gel Pen, Caran d'Ache 849 Nespresso Edition, rOtring 800, OHTO GS01

평소 자주 사용하는 펜은 스틸폼 아크 젤 펜(Stilform ARC Gel Pen)으로 Pen N 보다 조금 얇다. Pen N을 사용하다 스틸폼 아크 펜을 손에 쥐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Antou Pen N의 실제 무게 측정

무게는 43.48g으로 캡을 제거했을 때는 31.9g이 나왔다. 평소 사용하는 펜은 38.43g으로 무게차이는 조금 느껴지는 정도였다.

배럴에는 샌드블라스트 처리가 적용되어 은은한 무광 질감이 느껴진다. 제조사에 따르면 6061 알루미늄에 하드 아노다이징 처리를 적용했다고 한다. 내마모성을 높이는 가공이지만, 실제 사용하면서 표면이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자석으로 결착하는 캡은 생각보다 강한 자석으로 붙어 있어서 쉽게 빠지진 않을 것 같다. 펜과 함께 판매하는 액세서리 중에 펜 케이스가 있는데 케이스에 캡이 고정되어 있고 펜만 빼서 쓸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이 부분이 은근 편리해보였지만, 평소 펜을 사용하는 방식과 맞지 않아 주문하진 않았다. 사용 환경에 따라 유용한 액세서리가 될 것 같다.


Pen N의 디자인 킥은 클립일 것이다. 개성을 뽐낼 수 있게 다양한 색상의 알루미늄으로 변경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하지만 클립의 로고가 미묘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점이 아쉽다.



다양한 리필심을 사용하면서 느낀 필기감

기본으로 장착된 리필심은 제브라 사라사(0.5)로 예전에 회사에서 기본으로 나눠주는 펜이었는데 그저그런 펜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Pen N으로 써보니 느낌이 달랐다.


Pen N은 클램프가 리필심을 단단히 고정해 주기 때문에 필기할 때 유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필기감 자체가 달랐다. 사람들이 유격이 없는 볼펜을 왜 찾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볼펜의 필기감을 나름 잘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배럴에 따라 같은 리필심이라도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머릿속에 많은 볼펜이 지나갔는데 대표적인 볼펜이 하이테크 C 였다. 니들 팁 중에 유명한 볼펜심이었지만, 나에겐 이해하기 힘든 볼펜이었다.

뭔가 바늘로 종이를 긁는 느낌이 나는 볼펜을 싫어했는데 하이테크 C가 그런 느낌이 가장 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이테크를 비롯해 다양한 리필심을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그런 볼펜이었다. 그리고 볼펜 리필심에 대해서도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록하고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고, 쓰는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펜이다.



리필심 교체 중 발생한 두 가지 문제

이것저것 리필심을 바꿔가며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중,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With a solid all-metal body and only the refill as a consumable, PenN offers a more sustainable way to enjoy writing, designed for everyday use. It supports refills up to 6.1 mm in diameter and 120 mm in length, with the flexibility to trim or adjust when needed for a proper fit.

Pen N 상세페이지에는 지름 6.1 mm 이하, 길이 120 mm 이하의 리필심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리필심의 길이를 조절해 장착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리필심의 길이가 120mm를 넘더라도 펜이 손상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길이가 맞지 않으면 클램프가 배럴 안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하이테크 C, 은색 고깔 모양이 노즈 콘이다.

볼펜에 사용하는 리필심이 규격 보다 더 긴걸 넣으려 하면 노즈 콘이 더 이상 조여지지 않는 경험을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Pen N은 정해진 120 mm 규격 보다 더 긴 리필 심을 넣었더니 배럴 뒷 부분이 뚫려 버렸다!


배럴 뒷마개를 접착제가 아닌 나사 방식으로 결합했다면 어땠을까? 많은 CNC 가공 펜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개에 충분한 두께를 확보하고 나사산을 가공했다면, 이번처럼 리필심이 뒷마개를 밀어내는 상황에서도 쉽게 분리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접착 방식은 구조가 단순하고 제조 비용을 줄이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 그만큼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도 장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규격의 리필심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인 제품인 만큼, 예상치 못한 힘이 가해지는 상황까지 고려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제조사가 안내한 최대 길이인 120 mm를 초과하는 126 mm 리필심을 사용한 것은 분명 내 실수였다. 하지만 '120 mm보다 긴 리필심을 사용하면 배럴 뒷마개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면 무리하게 장착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한가지 더 있었다.




클램프에 장착된 리필심을 제거할 때 잉크 튜브를 그냥 잡아 당기면 팁이랑 분리될 수 있었다. 살살 빼면 잉크가 새어나오지 않고 다시 끼워 사용할 수도 있지만


조금 세게 잡아 빼면 잉크가 여기저기 묻을 수도 있다.

일부 리필심은 클램프가 붙잡는 힘 때문에 잉크 튜브를 잡아당기면 팁과 튜브가 분리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잉크 튜브만 잡아당기지 말고, 팁의 금속 몸체를 함께 밀어주면서 클램프에서 분리하는 것이 좋다. 단, 팁이 망가질 수 있으니 팁의 뾰족한 끝부분을 딱딱한 곳에 대고 누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이테크C 콜레토(LHKRF-10C4), 쥬스업 멀티펜(LPTRF), 펜텔 에너겔(LRN5TL)

모든 리필심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사진 속 첫 번째 리필심은 팁이 분리됐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리필심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사용한 리필심이 유독 팁과 잉크 튜브가 약하게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리필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제품인 만큼, 리필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조금 더 고려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런 문제로 킥스타터로 10월 19일에 문의를 남겼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본사 이메일로 다시 문의를 해야겠다.



배럴 뒷마개를 금속 접착제로 수리하기

AS를 해준다고 해도 해외로 펜을 보내고 다시 받고 그러기 귀찮아서 금속 접착제로 붙이기로 결정했다.


다이소에서 금속 접착제를 2,000원 주고 샀다.


A, B를 1:1로 섞어주면 된다. 냄새가 조금 고약해서 환기하면서 해야했다.


금속 접착제를 사용한 Pen N 배럴 뒷마개 수리 과정

잘 섞은 접착제를 가장자리에 도포해줬다.


떨어진 뒷부분을 잘 맞춰서 껴주고 꾹 눌러줬다.


삐져나온 접착제는 휴지로 닦으니 나름 깔끔해보인다. 그나마 펜이 검은색이라서 티가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경화되기까지 30분이 필요하다.

접착제로 붙였지만 120 mm 넘는 리필심을 사용한다면 다시 뚫릴 것 같다.

한 달 반 넘게 뒷마개가 분리된 상태로 사용했지만, 필기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펜이 손상된 상태라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Antou Pen N, 60일 사용 후의 생각

리필심 팁이 분리되는 일만 없었다면, 배럴 뒷부분이 손상되는 일만 없었다면, 클립에 새겨진 로고만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면 거의 완벽한 펜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사소하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배럴이 손상된 일은 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60일 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Pen N의 가장 큰 장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나의 배럴로 다양한 리필을 유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아쉬움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요즘은 아침마다 필사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리필을 번갈아 끼워가며 필사도 하고 쓰는 맛도 즐기고 있어 나름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문장을 쓰더라도 리필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필기감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Pen N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