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래픽 디자인만 할 줄 알았다.
그렇게 늙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15년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싫증이 났다.
가끔 만나는 폭력적인 클라이언트들에 의해
조금씩 쌓인 피로가 문제였다.
그들은 늘 한주 동안 조용하다가
금요일 퇴근 직전에 수정사항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결과물을 기대했다. 아오!!!
이정도 했으면 됐다 싶어,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혼자가 된지 4년이 됐다.

그동안 여러 일을 해왔다.
이번 달도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해외 키보드 회사에서 신제품 촬영을 맡아달라고 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왜 나한테 연락했을까 싶었는데,
1년 전에 잠깐 함께 일했던 인연이었다.
그때 좋게 봐줬나 보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며칠 동안은 컨셉 문서를 받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디자인 할 때처럼 레퍼런스 조사부터 시작했고,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니 장비가 필요해 결국 큰돈을 썼다.
좋게 봐준 만큼 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출도 커졌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받는 돈에 비해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서,
이러니 돈을 못 모으지 싶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늘 그래왔다.
돈을 받은 만큼만 하는 게 내 성향에 맞지 않아서,
항상 더 해줬다.
덕분에 클라이언트 만족도는 좋았는데,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꼭 나타났다.
이번 담당자는 제발 그러지 않길 바란다.

새로운 일은 늘 긴장되고 설레고 부담스럽다.
그래도 한다. 내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질 거라는 믿음 때문에.
블로그와 유튜브를 하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다.
큰돈이 되진 않지만,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