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은 매주 금요일이 무비 데이다.
한 주 동안 각자 뭘 볼지 볼거리를 찾곤 한다.
그날 기분에 따라 뭐가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번 【아주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야】를 보고 난 뒤
【성난 사람들 2】, 【파과】, 【노바디2】, 【사람과 고기】를 봤다.
아쉬운 것도 있었고, 뻔하지만 재밌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사람과 고기】였다.

【사람과 고기】는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지만
늘 웃음을 줬다.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웃음 뒤에는 주요 사회문제인 노인 빈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고기는 그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사람을 만나게 하는 역할도 했다.
처음엔 고기가 그냥 먹고 싶은 것이었는데
갈수록 고기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해 보였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People and Meat인데
Meat의 발음이 Meet와 비슷한 건,
그냥 지나치기엔 묘한 우연이다.

그렇게 고기는 그들을 가족처럼 뭉치게 해줬다.
각자의 사정으로 원래의 가족과는 떨어져 무기력하게 살았지만
세 사람이 함께하면서 활력을 찾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가 노인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노인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았다.
나이를 떠나서 각자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리움, 외로움은 늘 존재한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사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영화는 그 해답을 말하는 대신,
고기를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고기를 구워 먹는 행위는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갔던 고깃집,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갔던 고깃집,
웃고 떠들면서 맛있는 거 먹는다고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고깃집에 처음 갔던 기억도 떠올랐다.
6~7살 정도 됐을까.
그런데도 아빠, 엄마의 미소와 웃음 소리가 기억난다.
어른들을 따라한다고 이쑤시개를 어설프게 사용했는데
그게 부모님을 웃게 만들었었다.
아버지는 이제 곁에 없으니 다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지만,
고깃집을 떠올리면 그 기억 속엔 여전히 존재한다.
고기는 그런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까.

목청껏 웃고 싶어서
목놓아 울어본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창공을 잊은 채 주저않아
그저 필럭이는 날개짓
가슴 속에 할 말이 너무 많아
배고픔도 잊어버린다
호떡 하나 주세요
그 한마디 건네기가 겸연쩍어
여적 춥다
시린 가슴 덥혀지게 불이나 질러볼까
눈떠 보니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
이 시는 영화 마지막쯤에 등장한다.
영화 속 노인들은 대단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데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이 구절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 것 같았다.
영화 속 노인들은 가난해서 힘든 것도 있지만,
사실은 존엄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것이 더 힘들어 보였다.
고기 한번 먹고 싶다는 말,
누군가에게 밥 한 끼 사달라는 말,
도움을 요청하는 말.
그런 말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고독.
시인은 호떡 하나를 말하지만,
영화는 고기 한 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들은 계속 농담하고 떠들고 투덜거리지만,
실제로는 말하지 못한 깊은 이야기들이 많아 보였다.
외로움, 가난, 후회, 자존심.
이런 것들이 전부 숨겨져 있어 보였다.
영화는 분명 가난한 노인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감독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불쌍하게만 보지 않았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매일 한우를 먹고, 누군가는 고기 한 번 먹기 어렵다.
그런데도 아침은 온다.
햇살은 모두에게 똑같이 비춘다.
세상이 불공평해도 사람은 여전히 살아간다.
외로움도, 가난도, 후회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고기를 먹고 웃는 순간만큼은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으니까.
영화는 그 해답을 말하는 대신,
고기를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꼭 고기가 아니더라도 함께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시를 읽고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대단한 희망도 아니고
세상이 바뀐다는 말도 아닌데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이 다시 온다는 것이
당연히 알고 있는 건데 다르게 느껴졌다.
세상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내 삶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밥 한 끼 먹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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